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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자유여행 #6

포르모사 공화국 포르모사(formosa). 지난 며칠 대만을 여행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뇌리에 꽂힌 글자다. 한자가 아니라 영어 표기다. 가오슝 지하철역에서 타이중 어느 학교에서 국립자연과학박물관에서 보았다. 특정 지명이 아니란 이야기다. 이제 조금 궁금해져서 검색을 했다. 라틴어와 포르투갈어 등에서 쓰는 단어로 아름답다는 의미다. 무엇이 아름다울까? 더 검색했다. 서양인이 부른 이름이다. 16세기에 대만을 발견한 포르투갈 선원이 섬이 아름답고 말한 데에서 유래됐다. 17세기 네덜란드가 대만을 식민 지배하던 때에 포르모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19세기에 대만이 포르모사 공화국이라는 공식 국호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포르모사 공화국은 당시 일제에 의해서 단 5개월 만에 사라졌다. 청..

다른나라 여행 2022.09.23

미용실에서

미용실에서 나는 말이 없다. 갈 때마다 다듬어 달라고만 말하고 일절 말을 하지 않는다. 딱히 원하는 머리 스타일도 없다. 지난 세월 머리에 별의별 짓을 다 해보았으나 결과는 애호박이냐 단호박이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절대 수박이 되지 않는다. 수박이 된 상상만 실컷 했다. 다른 미용실에 가거나 미용사가 바뀌어도 내 요구는 달라지지 않는다. 조금 다듬어 주세요. 머리를 자르다가 미용사가 어떤 말을 건네도 무조건 '네, 그렇게 해주세요.'하고 만다. 그러고 나서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미용사와는 결별이다. 말없이 머리를 잘 다듬어주는 미용사를 좋아한다. 말을 하지 않다 보니 눈을 감는 버릇이 들었다. 앞머리 자를 때만 감던 눈을 머리 자르는 동안 쭉 감게 됐다. 그러다 졸았던 적이 몇 번 있다. 졸지 ..

어쩌다 기록 2022.09.21

대만 자유여행 #5

가오슝에서 타이중까지 가오슝 다음 행선지인 타이중으로 이동하려고 쭤잉역으로 향했다. 타오위안공항에 도착한 후 그새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은 만국 공통이다. 어디에 있든 빠르게 흐른다. 시간이 아까워 고속열차를 타기로 했다. 해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공하신희’ 현수막이 쭤잉역사에 내걸렸다. 근하신년과 유사한 뜻이다. 수십 년 동안 꾸역꾸역 한자를 공부한 시간이 아깝지 않음을 대만에 와서 느끼게 될 줄이야. 뭐든 배워두면 써먹을 데가 있다고 했다. 한 시간을 달려 타이중역에 도착했다. 타이중 기차역, 까르푸, 타이중 문화창의산업단지에 인접한 곳에 숙소를 잡았다. 다음 목적지인 타이베이까지 타이중 기차역에서 일반열차를 이용할 계획이었다. 이번엔 시간보다 돈이 아까웠다. 타이중 국립자연과학박물관 아동과 함께 여..

다른나라 여행 2022.09.21

어쩌다 8월에 간, 군산 초원사진관

지난여름 군산에 다녀왔다. 근대사 공부를 하다가 군산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마음을 먹었다고 실천을 소화하는 건 아니다. 마음에 끌려간 곳은 군산이 처음이었다. 구한말 개항장이자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곳. 오래전 군산을 직접 보고 싶었다. 걸어보고 싶었다. 항구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간 군산에서 생각지도 못한 초원사진관에 가게 됐다. 골목길을 걷다가 사람이 붐비는 지점을 보게 됐고, 곧 알게 됐다. 초원사진관이 군산에 있다는 걸. 8월의 크리스마스를 관람했다면 절대 모를 수 없는 곳. 초원사진관 앞에서 아동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스무 살 때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았다. 대학 여름방학이었다. 비디오를 빌려 친구 집에서 여럿이 함께 보았다. 한창 이성에 관심 많은 ..

어쩌다 기록 2022.09.19

아이 용돈으로 그랩(grab) 주식에 투자를

작년 여름에 아동을 모시고 증권사에 들렀다. 유태인 아동처럼 일찍 주식에 손을 대길 바랐다. 아동에게 동의를 구하고, 그간 모은 용돈으로 주식을 사줬다. 첫 주식인 만큼 세계 시총 1위 기업 주식만 샀다. 평소 사과를 잘 먹지도 않고, 제 잘못에 대해 사과도 잘하지 않지만, 사과폰만큼은 동경하는 아동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아동 계좌에 보관해둔 사과가 홍옥이 됐다. 내 계좌는 아오리 혹은 블루베리. 여하튼 그새 배당금도 제법 쌓였다. 사과 주식을 사기에는 버거운 금액이긴 하다. 결국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주식을 찾아봤다.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아는 건 하나. 그랩이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때마다 사용하던 택시 앱을 만든 회사다. 흰색 그랩 로그가 새겨진 녹색 점퍼를 여러 도시에서 보았다. 일반..

소액주주 2022.09.17

대만 자유여행 #4

리우허 야시장 해가 떨어져서 저녁을 먹을 곳을 찾다가 야시장을 가기로 했다. 어릴 때 야시장 구경을 간 기억이 난다. 구경거리와 먹거리가 넘쳤다. 백미는 서커스 공연단이었다. 야시장이 아니면 거의 볼 수 없는 공연. 앞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공연을 관람했겠지. 지금은 찾기 힘든 야시장과 서커스 공연단.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숙소 근처 리우허 야시장을 찾았다.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 앞에 이동식 가게와 테이블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간식거리와 식사류가 즐비하고, 거리가 붐볐다. 굴, 새우, 생선 등 해산물부터 볶음밥, 취두부, 큐브 스테이크 같은 먹거리에 시선이 꽂힌다. 취두부 냄새는 청국장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감당이 되지 않는다. 두부를 이용해서 만든 음식 가운데 유일..

다른나라 여행 2022.09.15

가을은 어떻게 타는 것인가

하늘이 더 높아졌다. 높이 날던 새가 낮게 난다. 강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새가 바람에 맞섰다. 자전거를 타려고 사람들이 대여소에 줄을 섰다. 바람을 등지고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보다 맞바람을 맞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나는 벤치에 앉아 멍 때렸다. 한참이나 빠르게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았고, 낮게 나는 검은 새 몇 마리 보았고,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나처럼 벤치에 앉은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가을을 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계절을 모두 탄다. 참 딱하고 별나다. 계절 말고 자전거나 탈 일이지.

어쩌다 기록 2022.09.12

책/ 박완서 『호미』

헤르만 헤세는 잘 읽히지 않는 책을 애써 읽기보다 자신에게 잘 맞는 책을 읽으라고 했다. 내가 선호하는 작가가 몇 명 있다. 잘 읽히고, 읽고 나면 마음이 평온한 책을 쓰는 작가의 책은 소장한다. 박완서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글이 잘 읽힌다. 소설보다 산문을 더 좋아한다. 『두부』와 『산문』과 같은 산문집은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삶에 어떤 지침을 준다. 무거운 가르침이 아니라 깊은 성찰을 통해 깨달은 경험을 말하듯 들려준다. 늙어갈수록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고 적당히 따습고 적당히 딱딱한 내 집 잠자리에 다리 뻗고 눕는 것만큼 완벽한 휴식은 없다. 박완서 『호미』(열림원) 나이 들수록 과거를 회상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새로운 경험을 찾기보다 무탈한 일상을 원한다. 그게 자..

독서 2022.09.11

사찰 이름이, 와우정사

와우정사에 다녀왔다. 경기도 용인 연화산 아래 자리잡은 사찰이다. 절 이름이 특이했다. 대부분 세 글자인데, 네 글자다. 와우는 무슨 의미일까. 감탄사는 아닐 텐데. 머리를 잠깐 굴리다가 검색했다. 와우는 누운 소라는 뜻이다. 누워 계신 부처님을 의미한다. 교종 열반사상을 바탕으로 한 절이다. 상좌불교가 많은 동남아시아가 교종 중심이다. 그래서 이 사찰이 이국적이라는 평이 많다. 사찰 이름만 특이한 게 아니라 둘러볼수록 국내 다른 절과 다른 불상 등 조형물을 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건 사찰 입구에서 마주하는 거대불두상. 높이는 대략 8미터다. 불두 생김새와 표정이 국내 산지 승원에서 보던 불상 얼굴과 다르다. 불두상 아래 작은 연못을 꾸몄다. 작은 불상 수백이 연못을 두르고 섰다. 적당히 땀이 나는 ..

우리나라 여행 2022.09.09

대만 자유여행 #3

아이허에서 아동과 러브 보트를 제법 값이 나가는 러브 보트를 타게 됐다. 아이가 타고 싶다고 해서. 안 타면 또 무엇을 할 텐가. 30분 동안 강바람을 맞으며 야경을 관람했다. 대만 국기가 뒤덮인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국제대회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국기가 밝은 조명 아래 빛난다. 보트에서는 가이드가 쉬지 않고 말을 한다. 아이허 유래, 가오슝 역사와 같은 정보를 알려주고 있겠거니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러브 보트는 역시 성별이 다른 두 사람이 타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산꼭대기에 동물원이, 가오슝 서우산 동물원 가오슝 거리는 깨끗하다. 오래된 건물과 대조를 이룬다. 새로 지은 건물도 더러 오래되어 보인다. 한자로 된 간판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흘림체로 쓴 시뻘건 한자. 어디선가 많이..

다른나라 여행 2022.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