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책/이양하 『신록 예찬』

숫양 2022. 10. 20. 18:00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 있고 다정한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 하여 달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 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이 없다.
나무 中


돌아보니 나는 달이 아니라 바람 같은 친구, 새 같은 사람이었다. 내 마음이 항상 우선이었다. 내 마음을 돌보느라 친구 마음을 잘 살피지 못했다.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되기를 원했지만 친구는 줄고 연락 없는 연락처만 늘었다. 서운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렇게 여러 인연과 연락이 뜸해지고 나니 서너 명만이 남았다.

나는 여전히 달은 고사하고 바람과 새 같은 사람이다. 나무와 같은 친구가 되기에는 그릇이 아주 작다. 달이 되는 일도 쉽지 않다. 나는 사람 사이에 있기를 즐기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사랑한다.

이러한 때(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는 때)를 당하면, 나는 곁에 비록 친한 동무가 있고 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아니할 수 없으며...
신록 예찬 中

사람에게 갖던 관심이 점점 다른 것으로 옮겨갔다. 봄꽃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가을 하늘에 마음이 더 쓰였다. 『신록 예찬』을 읽으면서 나는 내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지금 삶의 어느 지점에 발을 딛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자연에게 더 마음을 주는 나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고 하지 않았던가. 신록을 예찬하는 저자의 마음은 사람에게도 동등했다. 곧 사람 예찬이다. 나는 달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이고 싶다.

신록예찬(범우문고 161)
저자
이양하
출판
범우사
출판일
201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