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10

책/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1. 찬밥과 어머니 혼자 산지 오래되었다.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혼자 산 지 오래된 어머니도 그러하리라. 내가 밥상머리에서 늘 어머니를 생각하듯 어머니도 나를 생각하실 것이다. '찬밥과 어머니' 中 혼자서 12년을 살았다. 이십 대는 온전히 혼자였다. 자주 쓸쓸했고, 아프면 어김없이 서러웠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버지가 부러웠다. 여전히 어머니에게서 밥상을 받고 있어서. 그래서 어머니 밥상이 그리웠다. 때로 꼴 보기 싫고 원수 같아도 나와 함께 밥을 먹어주는 식구가 있다는 건 복이다. 그 사실을 가슴에 새겨둔다. 혹시 이혼을 당해서 혼자가 될 때를 대비해서 어지간한 요리는 배워두었다. 2. 가족사진 내가 한 번이라도 가족사진을 찍어보았다면 사진 속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이 내게 번져올 수도 있으련만..

독서 2022.11.04

책/파트리크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

그 책을 분명히 읽었는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책이 여러 권이다. 저자 이름이나 책 제목을 까먹기도 한다. 건망증은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쥐스킨트 단편집 『깊이에의 강요』에 수록된 산문 ‘문학적 건망증’을 다시 읽었다. 허둥지둥 글 속에 빠져 들지 말고, 분명하고 비판적인 의식으로 그 위에 군림해서 발췌하고 메모하고 기억력 훈련을 쌓아야 한다.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확인했다. 돌아서서 까먹더라도 책을 읽었다는 기록을 어딘가에 해둔다. 기록한 노트를 다시 들추어 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읽은 책의 내용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책이 아니더라도 기억할 것이 차고 넘친다. 책을 읽는 가장 큰 목적이 아래와 같아서다.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

독서 2022.10.25

책/이양하 『신록 예찬』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 있고 다정한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 하여 달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 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이 없다. 나무 中 돌아보니 나는 달이 아니라 바람 같은 친구, 새 같은 사람이었다. 내 마음이 항상 우선이었다. 내 마음을 돌보느라 친구 마음을 잘 살피지 못했다.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되기를 원했지만 친구는 줄고 연락 없는 연락처만 늘었다. 서운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렇게 여러 인연과 ..

독서 2022.10.20

책/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 『거인』

틸먼 뵐칭거는 기와장이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평소 직원을 ‘내 돈 들여서 키우는 적’이라고 부른다. 직원이 실력을 키운 후 독립해서 기와장이가 되면 경쟁 관계가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데, 틸먼은 가업을 이을 수 없다. 키가 계속 자라는 ‘거인’이라서다. 성장병이다. 키가 지나치게 커서 가업을 이을 수 없다. 다른 회사에 취업하지도 못한다. 키 때문에 일을 할 처지가 아니다. 어른이 되기 전에 키 239cm. 어른이 되고서도 점점 자라서 세계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된다. 사람들 이목이 쏠리고, 서서히 차별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대놓고 조롱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이런 틸먼 앞에 여성 두 명이 나타난다.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 프란치. 프란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이다. 키카..

독서 2022.10.04

책/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일터와 가정에서 깊은 슬럼프에 빠졌을 무렵에 현실을 벗어나겠다고 읽은 책, 『인간실격』. 힘든 고비, 되려 비관적이고 우울한 글을 읽었다. 이열치열이랄까. 밝고 경쾌한 글과는 다른 형태로 위안을 받았다. 나쓰메 소세키 책을 읽으면서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를 알게 됐다. 작가 생애에 눈길이 갔다. 여러 차례 자살 기도 후 서른아홉에 자살로 생을 마감. 마침 나는 서른아홉이었고, 삶에 큰 고비를 맞았다. 부끄럼 많은 생을 살았습니다. 첫 번째 수기 파트의 첫 문장에서 숨이 턱 막혔다.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글을 읽었다. 나 역시 부끄럼 많은 생을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겠다. 어느 대목은 나의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듯했다. 저는 가족들한테 무슨 말을 들어도 말대꾸 한 번 한 적 없습니다. 사소한 꾸..

독서 2022.09.27

책/ 박완서 『호미』

헤르만 헤세는 잘 읽히지 않는 책을 애써 읽기보다 자신에게 잘 맞는 책을 읽으라고 했다. 내가 선호하는 작가가 몇 명 있다. 잘 읽히고, 읽고 나면 마음이 평온한 책을 쓰는 작가의 책은 소장한다. 박완서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글이 잘 읽힌다. 소설보다 산문을 더 좋아한다. 『두부』와 『산문』과 같은 산문집은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삶에 어떤 지침을 준다. 무거운 가르침이 아니라 깊은 성찰을 통해 깨달은 경험을 말하듯 들려준다. 늙어갈수록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고 적당히 따습고 적당히 딱딱한 내 집 잠자리에 다리 뻗고 눕는 것만큼 완벽한 휴식은 없다. 박완서 『호미』(열림원) 나이 들수록 과거를 회상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새로운 경험을 찾기보다 무탈한 일상을 원한다. 그게 자..

독서 2022.09.11

책/이상 『권태』

배경은 시골이다. 1936년 무렵 시골이다. 벌써 권태를 느낀다. 뭐가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촌에서 이상이 관찰한 풍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권태』(민음사) 속 ‘권태’ 이야기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는 권태를 잘 안다. 외갓집에서 키우던 소가 생각난다. 소가 반추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따분함을 느꼈다. 느려도 너무 느리다. 수필 ‘권태’에서 이상은 ‘소가 최고의 권태자’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어제까지도 죽는 것을 생각하는 것 하나만은 즐거웠다. 그러나 오늘 그것조차가 귀찮다. 이상,『권태』(민음사) 짖지 않는 개도 등장한다. 짖지 않는 개를 보며 이상은 또 권태를 느낀다. 변변한 장난감 하나 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 모습에서 권태를 발견한다. 할 일 없이 빈둥대..

독서 2022.09.06

책/김정선『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바야흐로 글쓰기 열풍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서 글을 쓴다. SNS에서의 짧으면서도 알맹이가 담긴 글, 제안서·기획서·홍보문 등 업무에 필요한 서식, 또는 책을 출간하기 위하여. 하지만 완성된 우리의 글은 때때로 비판을 마주한다. 내가 보기엔 멀쩡하기만 한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다들 말들이 많은 걸까?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20년이 넘도록 단행본 교정 교열 작업을 해 온 저자 김정선의 책으로, 어색한 문장을 훨씬 보기 좋고 우리말다운 문장으로 바꾸는 비결을 소개한다. 자신이 오래도록 작업해 온 숱한 원고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어색한 문장의 전형과 문장을 이상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추려서 뽑고, 어떻게 문장을 다듬어야 하는지 요령 있게 ..

독서 2022.09.04

책/버지니아 울프『런던을 걷는 게 좋아...』

술 마시다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실없는 농담과 객기를 즐기던 시절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를 아느냐고. 작가 이름은 아는데 작품은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읽지 않았다는 얘기다. 누군가 말했다. 버지니아에 사는 늑대잖아. 욕과 조롱이 쏟아진다. 헛소리 말고 술이나 마시라고 한다. 버지니아주에 늑대가 살긴 사나 싶다. 버지니아 울프를 안 지는 좀 됐다. 소설을 읽긴 했다. 감흥이 크게 없었을 것이다. 잘 읽혔다면 대표 작품 한 권 정도는 샀을 테니까. 몇 해 전 중고서점에 들렀다. 크기가 작고, 표지가 노란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굳이 사지 않아도 될 만큼 분량이 적은 책이었다. 제목이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였다. 제목이 내용 전체를 아우르는 듯했다. 책을 집어..

독서 2022.08.30

책/피천득 『인연』

표지 제목만으로도 끌리는 책. 목차를 훑다 보면 내용이 궁금하여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 그 책을 사서 곁에 두고 종종 꺼내어 읽는다.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고, 읽을 때마다 감탄이 든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피천득 선생의 『인연』을 다시 펼쳤다. 우리나라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피천득, 그리고 수필집『인연』. 시대는 달라도 일상에서 우리가 자주 경험할 법한 삶의 단면을 툭툭 떼어 내어 쉬운 우리말로 전해 준다. 그래서 어른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나이 들수록 더 깊이 공감할만한 주제가 많고,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다면 감동으로 다가오는 수필도 적지 않다. 연인과 아프게 헤어진 경험이 있다면 「인연」을 읽으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가슴 아플 테고, 한창 아이를 양육하는 아버지..

독서 2022.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