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4

운전면허 적성검사

도로교통공단에서 문자를 받았다. 올해가 운전면허 적성검사 기간이란다. 특별히 어렵거나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지도 않은데 가기 싫어서 열 달이 흘러가는 걸 바라만 보았다. 더 미루다가 까먹을지도 몰라서 면허시험장에 다녀왔다. 연말이라서 그런지 시험장이 더 붐비는 듯했다. 접수 전 신체검사부터 했다. 세월이 가도 면허시험장 신체검사장은 별로 변한 게 없다. 예전에는 앉았다 일어나 보라거나 몇 가지 검사를 더 받았던 듯한데, 이제는 시력 검사만 한다. 다른 검사는 각자가 검사지에 기록하는 방식이다. 시력 검사도 색맹이라든가 다른 검사 없이 시력만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심지어 검사를 하기도 전에 신체검사비부터 납부했다. 그러니까 눈만 멀쩡하면 누구나 쉽게 면허증을 갱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

어쩌다 기록 2022.11.23

예술가가 못 된 이유

예술가와 세인과의 현격한 차이는 요컨대 예술가는 성격의 솔직한 표현이 그대로 행동되는 것이요, 세인의 상정은 성격이 곧 행동될 수 없는 곳에 있다. 예술가가 예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은 이 솔직한 성격의 고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용준, 『근원 수필』 내 꿈은 예술가였다. 부모님은 내 꿈을 반대했다. 예술가가 되면 가난을 면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기술을 가지셨고, 예술은 취미로 하셨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안방에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밤새도록 그림을 주고받던 시절이었다. 돌아보니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은 건 잘한 일이다. 예술을 배웠다면 여태껏 배를 곯았을 것이다. 살아보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다. 천재가 수두룩하다. 타고난 예술가는 일반인과 무엇..

어쩌다 기록 2022.10.12

미용실에서

미용실에서 나는 말이 없다. 갈 때마다 다듬어 달라고만 말하고 일절 말을 하지 않는다. 딱히 원하는 머리 스타일도 없다. 지난 세월 머리에 별의별 짓을 다 해보았으나 결과는 애호박이냐 단호박이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절대 수박이 되지 않는다. 수박이 된 상상만 실컷 했다. 다른 미용실에 가거나 미용사가 바뀌어도 내 요구는 달라지지 않는다. 조금 다듬어 주세요. 머리를 자르다가 미용사가 어떤 말을 건네도 무조건 '네, 그렇게 해주세요.'하고 만다. 그러고 나서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미용사와는 결별이다. 말없이 머리를 잘 다듬어주는 미용사를 좋아한다. 말을 하지 않다 보니 눈을 감는 버릇이 들었다. 앞머리 자를 때만 감던 눈을 머리 자르는 동안 쭉 감게 됐다. 그러다 졸았던 적이 몇 번 있다. 졸지 ..

어쩌다 기록 2022.09.21

가을은 어떻게 타는 것인가

하늘이 더 높아졌다. 높이 날던 새가 낮게 난다. 강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새가 바람에 맞섰다. 자전거를 타려고 사람들이 대여소에 줄을 섰다. 바람을 등지고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보다 맞바람을 맞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나는 벤치에 앉아 멍 때렸다. 한참이나 빠르게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았고, 낮게 나는 검은 새 몇 마리 보았고,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나처럼 벤치에 앉은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가을을 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계절을 모두 탄다. 참 딱하고 별나다. 계절 말고 자전거나 탈 일이지.

어쩌다 기록 2022.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