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 시골이다. 1936년 무렵 시골이다. 벌써 권태를 느낀다. 뭐가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촌에서 이상이 관찰한 풍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권태』(민음사) 속 ‘권태’ 이야기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는 권태를 잘 안다. 외갓집에서 키우던 소가 생각난다. 소가 반추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따분함을 느꼈다. 느려도 너무 느리다. 수필 ‘권태’에서 이상은 ‘소가 최고의 권태자’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어제까지도 죽는 것을 생각하는 것 하나만은 즐거웠다. 그러나 오늘 그것조차가 귀찮다.
이상,『권태』(민음사)
짖지 않는 개도 등장한다. 짖지 않는 개를 보며 이상은 또 권태를 느낀다. 변변한 장난감 하나 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 모습에서 권태를 발견한다. 할 일 없이 빈둥대며 보내는 일상에서 극도로 권태감을 느낀다.
권태 끝판왕이다. 무기력감이 극에 달한 모습이다. 시절이 엄혹했다. 그러나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은 청년이었다. 수필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병이 가혹했다.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먹고 잘 줄 아는 시체…
이상,『권태』(민음사)
지금은 권태를 느낄 여유가 없다. 세상이 시끌하다. 고마운 일인가. 회사에서는 바쁜 게 좋다던데. 빈둥거리면 언제 잘릴지 모르니까. 집에서도 빈둥거리면 눈치가 보인다. 집안일을 해야 한다.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에 권태를 느끼다가는 권태기가 찾아오기도 전에 안사람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이상 『권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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