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군산에 다녀왔다. 근대사 공부를 하다가 군산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마음을 먹었다고 실천을 소화하는 건 아니다. 마음에 끌려간 곳은 군산이 처음이었다. 구한말 개항장이자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곳. 오래전 군산을 직접 보고 싶었다. 걸어보고 싶었다. 항구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간 군산에서 생각지도 못한 초원사진관에 가게 됐다. 골목길을 걷다가 사람이 붐비는 지점을 보게 됐고, 곧 알게 됐다. 초원사진관이 군산에 있다는 걸. 8월의 크리스마스를 관람했다면 절대 모를 수 없는 곳. 초원사진관 앞에서 아동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스무 살 때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았다. 대학 여름방학이었다. 비디오를 빌려 친구 집에서 여럿이 함께 보았다. 한창 이성에 관심 많은 청춘들이 코를 홀짝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사내놈들이 서로 놀려댔다. 꽤 오래 마음이 저릿했다. 젊어 죽지 말고 건강하게 연애하고 싶었다. 결혼해서 아이도 놓고 오손도손 오래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스무 해가 훌쩍 지났고, 초원사진관 앞에 서서 아동과 사진을 찍고 있자니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영화 속 여러 장면이 스쳐갔다. 사진관 앞 나무 그늘 아래에서 정원과 다림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스크림을 먹지는 않았다.
여름에 가끔씩 군산에 가기로 했다. 훌륭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아서다. 초원사진관은 일부러 찾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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