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속 중국, 국립고궁박물원
아침 일찍 숙소에서 밀린 빨래를 했다. 여행하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빨래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더러 지저분하고 때로 냄새가 나더라도 낯짝 두껍게 하고 쏘다니겠지만, 함께 다니는 아동은 냄새에 민감하기도 하고 청결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매일 빨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탁기를 구비한 숙소를 선택한 이유다. 아침에 세탁하고 건조기로 바싹 말린 옷을 입고 숙소를 나섰다. 목적지는 국립고궁박물원. 숙소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고궁박물원이 종점이어서 느긋하게 타이베이 도심 풍경을 감상했다.
박물원 입장권을 사기 위해 먼저 순이 대만원주민박물관에 들렀다. 이곳에서 박물관 두 곳을 관람할 수 있는 통합입장권을 판매하고 있었다. 원주민박물관은 한 사업가가 후원해서 설립한 곳이라고 한다. 원주민 이해를 돕는 영상을 시청하고, 여러 원주민의 각기 다른 생활양식을 담은 각종 유물을 둘러봤다. 그럼에도 이곳은 전시 규모도 유물도 초라함을 지울 수 없다. 아마도 원주민이라서.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인디언 연설문집』(더숲)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우리는 당신들의 문명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아버지들과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살았던 방식대로 살기를 원할 뿐이다." 대만 섬에는 원주민이 여전히 살고 있다. 바로 그 원주민이 살던 섬에, 1948년 겨울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가 건너왔다. 해군 함선에 주요 중국 문화재를 가득 싣고서.
고궁박물원 입구에 쓰인 天下爲公(천하위공)이 무슨 뜻이냐고 아동이 물었다. 천하위공은 '세상은 (개인 소유가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는 뜻이다. 쑨원의 좌우명으로, 중산릉 삼문에도 쓰여있다. 모두의 것이지만 내 것은 아닌 문화재를 보러 박물원에 들어섰다. 평일 한낮인데도 방문객으로 붐볐다. 간간이 우리말이 크게 들렸다. 단체 관람을 오신 분을 안내하는 가이드였다. 관람할 것과 관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단호하게 말했다. 따라다니고 싶었으나 워낙 이동이 빨라서 이내 포기했다. 학교에서 배웠던 중국의 역대 왕조를 상기하면서 전시품을 찬찬히 둘러봤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배추 모양의 취옥백채와 동파육을 본뜬 육형석은 하필 자리를 비웠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 금동대향로처럼 집에 가져가고 싶은 유물이 넘쳤다. 모두의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하고 싶었다. 반나절 둘러보기엔 중국의 역사가 길어도 너무 길었다. 대만에 다시 올 구실을 만드는 중이었다.
쓰린 야시장
종일 지루했을 아동에게 보상이 필요했다. 스린야시장으로 향했다. 걷기도 힘들 만큼 시장 골목마다 사람이 북적거렸다. 적당히 줄이 늘어선 상점을 골라 큐브 스테이크, 지파이, 전병 등으로 허기를 달랬다. 아동이 난동을 부리기 전에 서둘러 게임 골목으로 이동했다. 게임은 국경이 따로 없었다. 어디선가 보았거나 해봤던 게임이었다. 승부욕이 발동한 아동이 점점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밤은 깊었고, 나는 깊은 수렁에 빠진 듯했다. 내일 또 오자는 말로 겨우 진정시켰다.
<2019년 자유여행 中>
다시 간다면: 아동 빼고 혼자 여행을...
#대만 #대만자유여행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스린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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