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호이안
다낭이 휴양지 이미지를 굳힌 반면, 호이안은 쇠락한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때 거대 무역항이었던 호이안의 투본강을 동서양의 많은 상인들이 드나들었을 것이다. 아마 고려 시대 예성강 벽란도처럼. 쇠락한 도시의 고요한 투본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기분이 매우 쇄락했다. 배낭 하나 덜렁 메고 온 여행에는 다낭보다 호이안이 제격인 듯했다.
쇠락한 도시지만 배낭 여행자와 단체 관광객이 물밀듯 몰려들어 활기가 넘친다. 옛 상인이 거주했던 올드 타운 덕분이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처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오후, 호이안
삼일을 보내면서 아동과 나는 오전 나절 올드타운에 갔다가 해가 지고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을 반복했다. 좋은 건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지겨우면 하지 않는다.
동선도 매일 비슷했다. 가장 먼저 중앙시장을 둘러봤다. 원래 쇼핑에 흥미가 없는 탓에 둘러만 보았다. 구경하다가 지칠 때 간식을 사 먹는 재미만 맛본다.
떤키 고택 앞에서 사람을 구경했다. 문 위에 한자로 진기라고 쓰여 있다. 중국인 상인의 집이라고 하는데, 베트남 전통모자인 농을 쓴 단체 관광객이 쉴 새 없이 고택 안으로 들어섰다. 폐가와 고택의 운명이 이렇게 다르다.
올드타운에는 떤키 고택과 유사한 건물이 즐비하다. 옅은 황색의, 석회를 칠한 건물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대부분 상점이어서 골목을 걷다가 더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아무 상점이나 들어섰다. 더위를 달래려고 카페 쓰어다를 마셔 보았는데,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단맛에 놀랐다. 군대에서 여름마다 즐겨 마시던 냉커피도 울고 갈 단맛이었다.
건물 기둥에 세워 둔 액자에 시선을 빼앗겨 들어선 곳은 레한 갤러리였다. 레한은 프랑스 사진작가로 베트남 전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사진을 남겼다고, 직원이 알려주었다. 겉보기에는 단층의 작은 건물인 듯 보였지만 내부 구조가 독특했다. 실내 한편에 계단이 보였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사진 외에 소수민족의 전통의상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수가 오십이 넘는단다. 둘째 날 갤러리에 다시 들러 푸른 눈동자가 매력적인 아이 얼굴을 담은 엽서 한 장을 샀다. 아동이 졸랐다. 이유는? 가볍고 얇아서 가방에 쏙 들어가니까.
밤, 호이안
이따금 씨클로 무리가 고택 앞 거리를 오고 갔다. 씨클로를 운전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파란 반소매 셔츠와 검은 긴바지를 입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꾹 다문 입술마저 닮았다. 투본강에는 소원배가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해가 지면 소원배를 탈 작정이었다. 아동이 배를 타고 싶다고 졸랐기 때문이다. 예정에 없던 일이어서 구글 검색을 하는 손놀림이 바빠졌다.
계산기를 든 한 호객꾼이 말을 걸어왔다. 집요했다. 가격 흥정에 자신이 없는 나는 적정 가격-검색으로 확인했던-이 계산기에 찍힐 때까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호객꾼이 원하는 가격을 말해보라고 했다. 아동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만하면 됐다 싶었다. 이미 짠돌이 아빠가 된 것이다. 아동은 소원등을 투본강에 띄우면서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올드 타운은 밤에도 불야성이었다. 어두컴컴한 구시가지를 밝히는 건 형형색색의 등불이었다. 등불만큼 다양한 색의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등불과 아오자이가 조화로웠다. 등불과 아오자이와 올드 타운의 조합이 잘 어울렸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노래 제목처럼 호이안의 밤이 아름다웠다.
<2019년 자유여행 中>
#베트남여행 #자유여행 #호이안 #호이안올드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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