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폭우가 내리기 직전, 보령에 다녀왔다. 짧은 여름휴가였다. 보령은 처음이었다. 머드축제 외에 아는 바 없는 지역이었다.
기록적인 폭우는 피했지만, 보령에 머무르는 동안 이따금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다행스럽게도 첫날만은 쾌청했다. 8월 초순의 무더위와 땡볕을 빗겨가진 못했지만.
초등학생과 함께 서천 국립생태원으로
하늘이 맑았던 첫날, 보령이 아니라 서천으로 이동했다. 이틀 이상 여행할 때는 아이와 함께 갈만 한 곳을 사전에 찾는다. 마땅한 곳을 보령에서 찾지 못해서 인접한 지역을 검색했다. 상화원, 안면도 할미 바위, 수덕사와 같은 곳들에 마음이 끌렸으나 이내 마음을 접었다. 부여 국립박물관과 서천 국립생태원을 두고 잠시 고민했고,입장료가 무료인 국립박물관과 달리 소정의 입장료를 지불하는 국립생태원에 가기로 했다. 어른 5천 원, 어린이 2천 원.
구글 리뷰를 참고하여 전시관에서가까운 서문 매표소로 입장했다. 다른 계절이었다면, 정문 매표소로 입장했을 것이다.
전시관 본관은 국립 시설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다. 열대관, 온대관, 지중해관 등 기후 전시관이 분리된 구조였고, 각 전시관을 따라 이동하며 다른 기후를 체험하는 재미가 있었다. 각 기후별 대표 동식물은 익숙한 종도, 더러 낯선 종도 볼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건 알다브라육지거북이다. 목과 다리가 길고, 큰 몸집을 가진 거북이인데, 걸음은 빠르다. 나보다 오래 산다.
언제 어디서 보아도 즐거운 수달은 출산 휴가를 떠났단다. 국립생태원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어미와 새끼 수달을 보러.
땡볕 탓에 대규모 야외 놀이터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반나절 가까이 전시관 내에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들른 전시관은 펭귄이 사는 극지관. 여름엔 극지관만 한 곳이 없다.
보령은 칼국수, 칼국수는 보령
늦은 오후, 대천 해수욕장 인근 숙소에 도착했다. 바닷바람이 성가셨지만, 산책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저녁나절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으로 붐비던 해수욕장에 이튿날 아침 출입금지 팻말이 붙었다. 바닷물에 발을 담가 보려던 계획은 물 건너 갔다. 안면도에도 들르지 못했고, 상화원도 접었다.
결국 칼국수 한 그릇 먹고 귀가하기로 했다. 씁쓸했다. 먹구름이 잔뜩 끼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서둘러 목적지로 향했다. 칼국숫집은 먹쇠네굴집으로 골랐다. 모래가 씹히지 않는다는 다수의 리뷰를 믿었다. 가격도 저렴. (지금은 8천 원). 가격 대비 양이 차고 넘칠 정도였다.
보령에 와서 시내에 잠시 들른 일 말고 간 곳이 없었다. 보령 여행이란 말이 무색했다. 어디라도 가야만 했다. 갈매못 순교 성지로 갔다. 칼국숫집에서 멀지 않았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충청수영성과 쇠락한 모습의 여남조선소를 지나 해안 도로를 달리다 보니 갈매못 순교 성지가 보였다. 구한말 여러 차례 벌어진 천주교 박해 사건의 흔적을 잠시 좇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고요했고, 마을은 평온했다.
처음 가 본 보령 여행은 싱겁게 끝났다. 바닷마을 짠내를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다. 안면도가 기다리고 상화원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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