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제목만으로도 끌리는 책. 목차를 훑다 보면 내용이 궁금하여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 그 책을 사서 곁에 두고 종종 꺼내어 읽는다.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고, 읽을 때마다 감탄이 든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피천득 선생의 『인연』을 다시 펼쳤다.
우리나라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피천득, 그리고 수필집『인연』. 시대는 달라도 일상에서 우리가 자주 경험할 법한 삶의 단면을 툭툭 떼어 내어 쉬운 우리말로 전해 준다. 그래서 어른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나이 들수록 더 깊이 공감할만한 주제가 많고,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다면 감동으로 다가오는 수필도 적지 않다. 연인과 아프게 헤어진 경험이 있다면 「인연」을 읽으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가슴 아플 테고, 한창 아이를 양육하는 아버지라면 「서영이」를 읽으면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인연」중에서, 샘터)
수필 「인연」을 가끔 읽는다. 읽다가 이 대목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옛 인연을 떠올린다. 비단 헤어진 옛 연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지금은 만나지 않는 옛사람을 생각한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잊을 수 없는 사람, 만나고 싶지 않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 여러 사람을 떠올린다. 그 많은 사람과 보냈던 짧지 않았던 시간이 찰나와 같이 느껴진다. 나에게 온 인연을 더 소중하게 여겼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가슴을 가득 적신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운명처럼 받아 들일밖에.
부모가 된 후로 내 마음을 훔친 수필은 「서영이」다. 서영이는 피천득 선생의 막내딸이다. 여러 수필에 등장한다. 따님을 사랑하는 아버지 마음이 절절하다. 그 마음이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오롯이 전해진다.
나는 모든 시간을 서양이와 이야기하느라고 보냈다. (중략) 그리고 이 시간은 내 생애에 가장 행복한 부분이다.
(「서영이」 중에서, 샘터)
자식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선생이 딸을 키우던 시대는 지금보다 더 가부장적인 시대였음에도, 선생이 얼마나 막내딸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다른 아버지가 밖에서 허투루 보낸 시간보다 딸과 함께 이야기하며 보내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참된 시간이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선생은 기록했다. 이런 선생의 마음을 따님은 알았을까. 물론 알았을 것이다. 그 따님은 커서 선생과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처럼 대학교수가 되셨다.
이 책은 거울과도 같다. 나의 과거를 들여다 보고, 현재를 살펴보게 만든다. 한 인간이, 한 어른이, 한 부모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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